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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사색하는 철학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 『리바이어던』의 저자로, 사회계약론과 절대주의 정치철학으로 유명

by 아틀란티스황금성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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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치철학의 거장,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리바이어던의 사상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근대 정치철학의 초석을 놓은 사상가로,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오늘날까지도 정치학과 철학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읽히는 고전입니다. 그는 인간 본성과 국가의 기원, 그리고 통치자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토마스 홉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가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난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1588년 4월 5일, 영국 웨스트포트(현재의 몰메스버리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하려 했던 해로, 홉스는 나중에 "내 어머니는 쌍둥이를 낳았는데, 나와 공포였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말은 그의 정치철학이 공포와 불안정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합니다.

홉스의 아버지는 지역 성직자였지만 말다툼 끝에 도망가야 했고, 어린 토마스는 삼촌의 보살핌 아래 자랐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매그달렌 홀(현 허트퍼드 칼리지)에서 학업을 마친 후, 캐번디시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유럽 각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시기 그는 갈릴레오, 데카르트, 가상디 등 당대 저명한 과학자와 사상가들을 만나 교류했으며, 특히 유클리드 기하학을 접한 후에는 기하학적 증명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수학적 방법론은 후에 그의 철학적 접근법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 내전과 홉스의 망명 생활

1640년대에 시작된 영국 내전은 홉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찰스 1세와 의회 세력 사이의 격렬한 대립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고, 왕당파와 가까웠던 홉스는 1640년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11년간의 망명 생활 동안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체계화했으며, 1651년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을 출판했습니다.

홉스는 영국 내전의 혼란과 무질서를 직접 목격하면서, 강력한 주권자에 의한 질서 유지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키며, 절대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홉스의 주요 철학적 사상

1. 유물론과 기계론적 세계관

홉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습니다. 그는 세계가 물질과 운동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모든 현상은 기계적 원인과 결과의 연쇄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도 신체 내부의 물질적 운동의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이러한 유물론적 관점은 당시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대에 급진적인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2. 인간 본성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홉스의 가장 유명한 주장 중 하나는 자연 상태(정부가 없는 상태)의 인간 삶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쾌하고, 잔인하며, 짧다(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고 설명했습니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투쟁합니다. 이를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안전과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이 비참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3. 사회계약론과 리바이어던

홉스의 핵심 이론은 사회계약론입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의 무질서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이를 절대 권력을 가진 주권자(sovereign)에게 양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권자는 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되는 강력한 존재로,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홉스는 이 절대 권력이 필요악이라고 보았으며, 주권자에 대한 저항권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했습니다.

홉스에 대한 비판과 영향

홉스의 사상은 당대에 격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종교계에서는 그의 유물론과 교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로 인해 그를 무신론자로 공격했고, 정치적으로는 왕당파와 의회파 양쪽에서 모두 비판을 받았습니다. 왕당파는 그가 주권자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 점을 비판했고, 의회파는 그의 절대 권력 옹호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홉스의 사상은 후대의 정치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존 로크와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홉스의 이론에 대한 응답으로 발전했으며, 현대 민주주의 이론과 법치주의 개념의 발전에도 그의 영향이 남아있습니다.

말년과 유산

내전이 끝난 후 홉스는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계속해서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리바이어던』 출판 이후에도 그는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며, 인간 본성, 자유와 필연성, 기하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홉스는 91세의 고령으로 1679년 12월 4일 하드윅 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망 당시에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논쟁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근대 정치철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홉스

오늘날 홉스의 사상은 여러 방면에서 현대 사회와 관련성을 갖습니다. 국가 안보와 시민의 자유 사이의 균형, 국제 관계에서의 무정부 상태, 권력의 정당성과 한계 등 현대 정치의 핵심 쟁점들은 홉스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강력한 통치 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현대 보수주의 정치 사상의 중요한 지적 원천이 되었습니다. 반면, 사회계약에 기초한 정부의 정당성이라는 그의 개념은 민주주의 이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홉스가 절대 권력을 옹호했지만, 그의 이론에는 통치자가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개념에도 그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 현실주의 정치철학의 선구자

토마스 홉스는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근대 정치철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의 현실주의적 접근법은 이상적인 국가가 아닌, 실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필요에 기반한 정치 체제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종종 비관적이고 냉혹하다고 평가받지만, 홉스는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했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이성을 통해 그러한 본성을 극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그의 사상에 대한 논쟁은 토마스 홉스가 제기한 질문들이 여전히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권력과 자유, 안보와 권리,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성찰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내용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과거 지혜로웠던 철학자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관점으로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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