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 페미니스트 윤리학과 '다른 목소리'의 주창자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윤리학, 심리학, 페미니즘 분야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입니다. 1936년 11월 28일 뉴욕에서 태어난 길리건은 특히 여성의 도덕적 발달이 남성과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는 윤리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교육
캐롤 길리건은 뉴욕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인문학에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스와스모어 대학(Swarthmore College)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래드클리프 대학(Radcliffe College)에서 임상 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길리건은 학문적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당시 주류 심리학 이론들이 주로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하버드 대학교에서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와 함께 연구하면서 그의 도덕 발달 이론이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되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목소리'의 발견
길리건의 가장 큰 학문적 돌파구는 1982년 출판된 『다른 목소리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녀는 기존의 도덕 발달 이론들이 주로 남성적 관점에서 개발되었으며, 여성의 도덕적 판단과 발달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콜버그의 이론이 주로 정의, 규칙, 원칙에 기반한 '정의 윤리학(ethics of justice)'에 중점을 두었다면, 길리건은 관계, 공감, 돌봄을 중시하는 '돌봄의 윤리학(ethics of care)'을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여성들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할 때 추상적인 원칙보다는 관계성과 책임, 상호연결성을 더 중요시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길리건의 연구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심리학 이론이 인간 경험의 다양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목소리가 무시되어왔고, 이로 인해 인간 발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불완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문적 영향력과 비판
길리건의 이론은 발표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그녀의 연구가 여성의 경험과 관점을 학문적 담론에 포함시키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환영했습니다. 『다른 목소리로』는 심리학, 철학, 교육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페미니스트 윤리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길리건의 이론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구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여성이 돌봄과 관계에 더 중점을 둔다는 주장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길리건의 초기 연구가 주로 백인 중산층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인종, 문화, 계층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경험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했습니다.
길리건 자신도 이러한 비판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이론이 단순히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차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다른 목소리'에 관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버드에서 뉴욕대학교로
1970년대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길리건은 1997년 뉴욕대학교(NYU)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뉴욕대학교에서 그녀는 인문학 및 응용심리학 대학의 대학교수로 임명되었고, 이후 뉴욕대학교 로스쿨에서도 강의했습니다.
뉴욕대학교에서 길리건은 더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소년들의 발달과 교육 문제에 주목하며, 『소년의 위기: 왜 우리의 아들들이 참된 자아를 잃고 있는가(The Birth of Pleasure: A New Map of Love)』와 같은 저서를 통해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소년들의 심리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습니다.
최근의 활동과 유산
2002년 뉴욕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은퇴한 이후에도 길리건은 계속해서 활발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문학과 심리학, 페미니즘을 접목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연극과 같은 예술 형식으로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길리건의 학문적 업적은 다양한 형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1992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6년에는 하인즈 상(Heinz Award)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길리건의 '돌봄의 윤리학'은 오늘날 철학, 심리학, 교육학, 정치학, 의료윤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이론적 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의 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교육 환경과 직장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대표 저서
길리건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단연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1982)입니다. 이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심리학과 페미니즘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저서들이 있습니다:
- 『여성의 심리적 발달: 자아와 도덕성의 통합(Women's Psychological Development: Integrating Self and Morality)』(1988)
- 『자아와 타인의 매핑(Mapping the Moral Domain)』(1988, 공동 저자)
- 『변화하는 자아: 소년, 소녀의 심리학(Making Connections: The Relational Worlds of Adolescent Girls at Emma Willard School)』(1990, 공동 저자)
- 『소년의 위기(The Birth of Pleasure)』(2002)
- 『저항의 시간(The Deepening Darkness: Patriarchy, Resistance, and Democracy's Future)』(2009, 공동 저자)
- 『가부장제에 저항하며(Joining the Resistance)』(2011)
- 『왜 남성은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은 아이들을 좋아하는가: 민주주의의 미래에 관한 심리적 탐구(Why Does Patriarchy Persist?)』(2018, 공동 저자)
결론
캐롤 길리건은 심리학과 윤리학 분야에서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 목소리를 부여한 선구자입니다. 그녀의 '돌봄의 윤리학'은 우리가 도덕적 발달과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길리건의 연구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그녀의 학문적 유산은 오늘날 우리가 더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길리건이 발견한 '다른 목소리'는 단지 여성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주류 담론에서 소외되거나 무시되어왔던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열어준 대화의 장은 앞으로도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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